그옛날 이야기/제로보드 백업

바보로 편하게 사는 것과 내맘대로 불편하게 사는 것.

캔디냥 2003. 1. 12. 17:12



바보인 채로 살면 세상 살기가 편하다.


아아, 이건 정말이다.
모르는 척. 안들리는 척. 안보이는 척 하면
세상 살기 정말 편하다.

어떤 일에나 실실 쪼개고
몰라요, 모르겠어요, 그런거 몰라요.
이렇게 말하고 다니면 살기 정말 편하다.








귀찮은거 넘 싫어하고 신경쓰는 것도 싫어하고.
뭐에 대해 조잘조잘 말하는 것도 싫어.
모르겠다. 몰라. 한 마디로 그냥 넘겨버리고,
누구에게나 어느 때에나 셀셀 쪼개고 다니고,
언제나 네네, 응응. 오케이 오케이 해 대는 나는.
어쩌면 세상을 바보인 척 하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내가 생각하는 걸 남들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
내 생각과 그대 생각은 분명 다른 것.
내 생각과 똑같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지.

... 실은 그렇게 설득하는 걸 귀찮아 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내 생각도 없는 척.
빙긋이 웃고 있는 얼굴로 네네.. 하고 사는 바보인 척.

아, 그래. 난 바보야- 하고 말하면서 편하게 살려고 하고 있다.
나란 사람은.
투덜대기도 귀찮은 거야. 남들에 대해 말하기도 지쳐버린 거야.

하긴, 이건 방어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남들이 나를 바보라고 말하면 정말 상처받으니까,
나라도 나를 바보라고 말해둬서, 데미지를 줄이는 거지.

아아주 얍삽한 방어막이야. 응응. 정말 그렇다.








그렇지만..
내가 나에 대해서 '난 바보니까' 라고 말한다고 해서,
남들마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해버리면...
이건 꽤 기분나쁜걸...-_-;;

남들이 볼 때에는 나는
아무 생각 없고 만만한 어린 여자애일 뿐이겠지만,
영원히 그런 것은 아닐거야. 누군가가 말했듯이.
내가 언제까지 흥미로운 어린 여자애일까.


아무 말 하지 않는다고, 항상 웃기만 한다고,
생각마저 없는 걸로 판단하면 곤란해요.

말 한마디 한마디로 날 늘상 깔아뭉개고,
내가 한마디 하려고 하면 이상스레 생각하고.
'니가 뭘 안다고 이 바부야' 따위로 말하면,
.... 나도 상처받아요.








나도 상처받는다고. 말을 안할 뿐.
나도 화내고 싶은 때가 있다고. 화를 안내니까 모르는군요.
나도 냉정해지고 싶은 때도 있다고. 언제나 마음 뿐이지만.
나도 가끔은 삐진다구요. 혼자서 풀어버리지만.

...나도 울어버리고 싶은 때가 있다고. 숨어서 울 뿐이지.








난 다른 사람에게 화내거나 징징대거나 투정부리고 싶지 않아.
내 맘대로 해 버리고 싶지 않단말이야.
그렇다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을 때가 없는 건 아니잖아?

..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난 바보니까, 그럴 때가 없는 줄로 알아요.
아아아, 그런 사람들이랑 말할 때면, 갑자기 와락 눈물이 나지.








이런 말을 주절주절 늘어놔 봤자,
내일이면 또 바보인 채로 인생을 편하게 살아가려고 하겠지.
화를 내려고 하는 것도 지금 뿐.
징징거리려고 하는 것도 지금 뿐.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기장에 끄적대는 걸로.
어쨌든 속은 풀리고 내일도 빙긋빙긋 웃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나는 가면을 쓰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편해. 바보인 채로 살아가는 것이.